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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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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와 한나라: 규제와 자유방임, 그리고 진보 역사

안녕하십니까. ---입니다. 제가 발표할 사기 속 인물은 진시황입니다. 아무쪼록 경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진시황이라.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명입니다. 헌데 이사람, 좀 이상합니다. 악명이 자자합니다. 당장 이 자리에서 확인해보겠습니다. (앞의 누군가에게 물어본다) 진시황을 어떤 사람으로 알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백성들을 괴롭힌 사상 최악의 폭군. 사방으로 전쟁을 벌인 전쟁광. 아방궁에서 향락을 즐기던 황제. 존재하지도 않는 불로초를 찾던 욕심쟁이. 권력욕의 화신진시황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기를 읽다 보면 진시황이 단지 폭군으로 간단히 평가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진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로 일관했던 사마천 조차, 진시황을 평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나치게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뿐만 아니라 진시황의 업적은 과연 최초의 황제라 자칭할 만 합니다. 우선 그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수백년 간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중국 대륙에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만인에게 공평한 법을 세워 백성들이 힘있는 호족들에게 수탈당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위해 진시황은 잠도 자지 않고 일하였고, 정책을 결정할 때면 신하들과의 토론을 거쳐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진시황은 폭군이라는 오명은 커녕 만인의 사랑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되지를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진시황과 그의 제국이 미움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진시황 사후, 그의 제국이 너무도 쉽게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놀랄만한 일입니다. 진나라는 전국시대 내내 승리를 거듭하던 최강의 군대를 가지고 있었고,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도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전국 통일 이후에도 막강한 군대는 여전히 수십만의 위용을 과시하며 남북의 이민족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천재지변 따위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진나라는 여전히 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나라는 고작 날품팔이에 불과했던 진승과 오광의 반란에 무너졌습니다. 결국 진시황이 백성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일들이 결국은 백성의 증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사마천은 가의의 과진론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진시황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수립하려는 과정에서 백성들을 가혹하게 대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진시황의 강력한 법가 통치를 백성들이 원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진시황이 처음으로 실시한 정책 중 대다수는 중국에 통일 왕조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했다는 점입니다. 진시황이 실시한 여러 정책들, 문자와 도량형의 통일, 도로망 정비, 국경 이민족과의 전쟁, 군현제의 시행, 법과 관료제로 유지되는 통치 시스템은 모두 진시황 이후 2000년 간 중국을 통치한 모든 왕조가 변함없이 실시한 정책들입니다. 단지 후세의 왕조들은 법가 대신 도가와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다는 점만이 다른데, 이조차도 실질적으로는 법가식 통치 기술이 여전히 유용하게 쓰였다는 점에서 진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했던 것이 문제였을까요?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자유방임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은 이후의 역사에서 증명됩니다. 진나라 멸망 후 세워진 한나라에서는 도가의 통치 철학을 받아들여 자유방임의 통치를 실시했습니다. 국가의 간섭 없는 세상에서 백성들은 편안해했고, 이 시대의 태평성대는 전설이 되지만, 오히려 이것이 한나라의 멸망 원인이 됩니다. 모두가 어떠한 제약 없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경쟁한 결과는 승자 독식의 세상이었습니다. 약자는 모든 권리를 잃었고, 거대 권력을 휘두르는 호족은 국가를 마음대로 주물렀습니다. 그리고 거대 호족이 국가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났을 때, 힘없는 사람들의 불만이 폭발했을 때, 한나라는 멸망했습니다.

결국 진시황의 법가식 통치는 제국을 운영하는데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의 법 앞에서는 강자라고 대우받고, 약자라고 차별받는 일이 없었습니다. 법은 강자의 횡포 앞에서 약자를 지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시대의 약자, 즉 힘없는 농민들에게는 환영할만한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력한 법이 그들을 호족의 수탈에서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시장 개입이고, 강자에 대한 규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시황의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다름아닌 이들 농민의 반란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저로서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기 힘듭니다. 이상의 역사적 사실에서 보건대, 자유방임은 일반 대중에게 불리합니다. 정부의 시장개입은 일반 대중에게 유리합니다. 하지만 대중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발로 차버렸고, 불리한 것을 좋아라 하며 태평성대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것은 현상입니다. 원인을 알기에 앞서서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바라볼 수 있는 분명한 현상입니다. 대중은 어떤 이유에서건 간섭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적어도 한국과 미국에서는 제 관찰이 옳은 듯 합니다.

미국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 개혁을 반대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공화당의 지지율이 높습니다. 새누리당은 한미FTA를 지지합니다. 그리고 경상도 농부들은 새누리당을 지지합니다. 미국 공화당은 오바마의 금융 규제가 지나치다고 비판하지만, 그동안 탈규제 정책으로 터진 금융위기로 피해를 본 것은 집값이 폭락한 미국 서민들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공화당을 지지합니다. 새누리당은 기업의 탈규제, 법인세 인하, 복지 포퓰리즘 타도를 외칩니다. 기업이 새누리당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통의 월급쟁이, 자영업자도 새누리당을 지지합니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모두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현상입니다.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의 이러한 무지는 그들이 가난하게 된 이유의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시장은 자신의 인센티브에 무지한 자들에게, 오판한 자들에게 빈곤이라는 즉각적이고 확실한 대가를 치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러한 현상 앞에서 진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종류의 호의는 무의미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도움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진시황의 제국이 멸망했듯이, 진보의 간판을 들고 나서는 모든 정치세력은 정권 창출에 실패할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이상 발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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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수업의 발표 대본 초안


군사-전쟁 이론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

국방과기술 국방과기술 2010년 12월호
[ 군사-전쟁 이론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 (1) - 남보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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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 전쟁, Tom Holland


   톰 홀랜드는 잘 팔리는 작가다. 그의 글은 재기발랄하면서도 삶에 대한 통찰을 던진다. 이러한 장점 중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역사를 재구성하는 그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역사를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도 거대하고 극적인 한 편의 비극이자 희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간파하여 역사를 한 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서 즐기기란 쉽지 않은 것이, 역사는 현실의 일이다 보니 세상의 그 많은 등장인물들과 그 많은 사건들을 일일이 조합하고 재구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E. H. Carr가 말했듯이, 중요한 사건과 중요치 않은 사건을 구분하는 일이야 말로 역사 기술의 첫 걸음이다. 하지만 인물은 어찌할 텐가? 당연한 말이겠지만, 역사는 세상 모든 인간들의 이야기이며 누구 하나 역사의 주체로서 소홀히 대할 수 없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삶의 주인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처한 시대를 고민하고 느꼈으며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여 살고 죽어갔다. 설사 역사가 그들을 패배자로 치부한다고 해도 이들을 놓쳐서야 어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는가? 하물며 이야기란 자고로 적이 보다 강대할수록, 보다 지혜로울수록 흥미진진한 법이다. 톰 홀랜드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고대 그리스를 잘 알고 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의 발흥지로서 그러하고, 서양 문명의 기원으로서도 그러하다. 그리스 신화와 미술, 철학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오로지 고대 그리스를 침략한 적이자 알렉산드로스에게 패배해 사라진 자들이다. 비록 그들이 거대한 제국을 이뤘다고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압제자들에 의한 악의 제국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선악의 이분법적 논의는 정당한가? 말할 것도 없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톰 홀랜드는 아테네 민주정의 성립을 이렇게 요약한다. 소수 귀족가문의 권력 쟁탈전 도중 등장한 최후의 무기. 그렇다. 아테네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겠으나, 그 시작은 분명 그러했다.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기 직전, 지금껏 가장 사악하고 오만했던 한 가문이 놀랄만한 제안을 들고 나왔다. 바로 권력을 대중에게 넘겨주자는 것. 당연히 이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폭발적이었고, 가장 사악했던 가문은 삽시간에 가장 위대한 가문으로 변화하여 권력을 손에 넣었다. 이는 어찌 보면 민주주의의 본질을 꿰뚫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허나 더 중요한 것은 비록 민주정의 시작은 이러했으나 이를 지킨 것은 힘없고 평범한 시민들의 열망이었다는 것이다. 자유를 원하는 그들의 바람이 살라미스의 승리를 이룩했다.




 한편 페르시아는 어떤가? 놀랍게도 페르시아는 정의의 제국이다. 페르시아는 빛과 광명의 신이자 정의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의 대변자다. 그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성전을 행하고 해가 뜨는 동쪽에서 해가 지는 서쪽까지 빛이 미치는 세상의 모든 곳에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이로서 페르시아는 문명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 이 평화는 인류가 최초의 정착 생활을 시작한지 무려 11,500년, 메소포타미아의 땅에 수메르가 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지 어언 4,5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만 년간의 분쟁을 잠시나마 종식시킨 그들의 정의는 물론 그들 자신이고, 악은 그들의 적이었다. 찬양해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일이란 것이 어찌 그렇게 단순하기만 하겠는가.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자유를 대가로 했다.


 톰 홀랜드는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9월 11일의 사건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여기서 그는 일견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추켜세우며 급진 무슬림의 광신성을 깎아내리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는 어쨌든 잘 팔리는 작가이고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인간의 역사는 수없이 많은 차원의 복합적인 선율을 만들어내고 남을 정도로 복잡하다. 그는 독자가 읽고 싶은 대로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지금 세계의 패권을 쥐고있는 미국과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를 찬양해 마지않는 자들은 이 책을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과 그가 내세우는 정의세계의 구현에 염증이 난 이들은 자유에의 갈망이 거대 제국을 상대로 거두는 놀라운 승리로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양자의 묘한 엇갈림뿐만 아니라 자유와 정의가 묘하게 맞물려 서로를 지탱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듯, 세상은 광기어린 소용돌이니까.


決死 - 해이수의 단편 『絶頂』을 읽다 문학

決死  - 해이수의 단편 『絶頂』을 읽다

나는 오랫동안 소위 동양의 고전이라는 것들을 탐독했다. 하지만
孟子라든지 荀子라든지 하는 책들이 주장하는 가치들은 현대인의 사고방식, 이른바 합리와 이성이라는 가치와 양립할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세상은 왕이 다스리는 세상, 불평등에 기반한 세상이었다. 덕분에 나는 이런 책들에 빠지게 된 시점부터 줄곧 사상적 방황아로 전락해야 했다. 결코 합리적일 수 없는 가치, 현세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에 매료된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얼마 전 왕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 , 천도의 구현자로서 오래 전 이 땅을 지배했던 그에게 바쳐야 할 것은 자명하며, 천명이 그에게 있는 한 충성의 대상은 둘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 이를테면 서기2000년이 될 때 까지도 성리학 국가 朝鮮이 살아남아 있는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개인이 겪을법한 내적 혼란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한 이야기였다. 분명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내가 상정한 주인공의 선택은 주어진 운명에 대한 투쟁이었고, 끝내 비극으로밖에 마무리 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아무튼 FERE LIBENTER HOMINES ID QUOD VOLUNT CREDUNT’[1]라 했다. 내가 해이수의 단편소설 『絶頂』을 읽은 건 이러한 배경 하에서였다. 그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끝내 실패하여 단두대 앞에 선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과 함께 묶인 왕의 모습을 보며 실패를 통감한다. 사형당하기 직전, 왕은 적왕을 상대로 마지막 부탁을 한다. 잘려진 자신의 목을 들고 부하들 앞을 걸어갈 테니, 지나쳐간 부하의 생명은 살려달라는 것. 놀랍게도 왕은 자신의 약속을 이뤄내어 부하들을 구한다.

얼핏 보기에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다. 인간은 생명이라는 한계가 허락하는 데 까지만 나아갈 수 있다. 죽음은 극복할 수도, 투쟁할 수도 없는 절대적 종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서 결코 꿈꿀 수 없는 것을 시도하여 성공했기 때문이며, 그가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바로 투쟁과 왕이다.

絶頂』에서 왕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 최대의 투쟁은 바로 자기와의 대결이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투쟁의 열매보다 그 과정에 더 많은 양분이 있으며’, ‘패배를 예감하면서 시작하는 투쟁도 있다. [2] 그들이 반란을 시작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새로이 만들고자 한 세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패배할 운명과 나 자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투쟁하리란 사실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할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다만 왕은 원장의 배신, 즉 투쟁의 가장 무서운 적인 고독의 엄습 혹은 이미 정해진 운명에 잠시 좌절한 듯 보인다. 하지만 왕은 끝내 죽음, 모두가 생각하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섬으로써, ‘나라는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3]라던 자기 자신마저 초월함으로써, 자신에게 충성을 바친 이들에게 행한 약속을 지켜낸다. 이로서 왕은 인간이 최후에 도달할 마지막 장벽을 넘어선다. 그의 의지는 왕의 자손들에게 이어짐으로써 시대와 세대마저 초월한다.[4] 그의 승리는 아찔하며, 통쾌하다.

그러나 왕이 행한 초월은 단지 그에게서 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왕이란 결코 지배자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만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왕은 모든 사람의 가슴에 직접 닿아 존재하는 분신과 같다. 司馬遼太郞가 말했듯, 충성하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은 대개 운명의 를 지닌다. 반쪽은 자신의 가슴 속에, 다른 반쪽은 왕에게. 이렇게 하여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설사 모든 일이 어그러져 가슴 속의 부와 함께 자신의 육체도 사라져 버린다고 할지라도 말이다.[5] 하물며 성공이야 달리 말할 필요나 있으랴. 그렇기에 왕의 잘린 목은 마침내 눈을 감을 수 있었다.[6]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줄곧 주목해 왔던 가치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고죽의 번뇌와 도전, 그리고 위대한 실패에서 금시조를 보았고, 뼈만 남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겠다고 외치던 맥베스에게서 운명의 질곡을 향한 투쟁과 번뇌에 울었으며, 劉邦大風歌에서 신분, 즉 타고난 운명을 극복한 자의 흥얼거림에 웃었다. 운명, 번뇌, 그리고 투쟁. 카이사르의 저 유명한 말처럼 나는 문학에서 내가 보고 싶던 것을 보았다. 여태껏 문학 속에서 교과서적인 정답만을 추구해왔던 나로서는 극적인 변화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허나 자칫하면 작가와의 대화를 도외시하고 자기 자신의 굴레에 얽매일지도 모를 이러한 방법을 두고 올바른 읽기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1]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만을 본다. (GAIUS JULIUS CAESAR. COMMENTARI DE BELLO GALLICO, 3.18.)

[2]해이수 외 9, 현대문학, 2008, 絶頂, peak - 피크』, pp113.

[3]전게서, pp108.

[4]해이수 외 지음, 황소북스, 2010, black coffee day,『수업』, pp224~231에서 저자의 에세이를 통해 미루어 볼 때, 저자는 이러한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주제에 강한 애착을 지닌 듯 보인다.

[5]司馬遼太郞, 양억관 옮김, 도서출판 달궁, 2002,『항우와 유방』권3, pp277.

[6] 윤후명 외 지음, 해럴드 경제 편집국 엮음, HERALD MEDIA, 2010, 「희미한 초상」,『나는 가짜다』, p27~31에서 저자는 정신의 창, 영혼의 렌즈로서 눈빛에 깊이 천착하는 버릇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 만큼 왕의 잘린 목이 보인 눈빛의 변화는 간과할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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